빛으로 짠 풍경, 법학도의 붓 끝에서 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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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의 고즈넉한 숲길을 지나 미술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로 5미터를 넘어 7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화폭이 가슴 가득 시원한 색채의 바람을 불어넣는다.
외교부가 소장하고 오랫동안 주미한국대사관의 태극기 곁을 지키며 격조 높은 한국 회화의 고유한 미학을 전 세계에 전해온 대작 <담>. 멀찍이 서서 바라볼 땐 나직한 볕을 품은 흰 담벼락과 청아한 나무가 어우러진 평온하고 정겨운 향토적 정경이지만, 한 걸음 더 댓돌을 딛듯 다가서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색채의 입체적 연회가 펼쳐진다.

이대원의 찬란한 색채 세계=평택매일뉴스
물감을 짓겨 섞지 않고 제각기 독립된 오롯한 발색을 유지하는 이 기법은, 마치 어두운 옻칠 바탕 위에 나전 장인이 박아 넣은 자개가 햇살의 각도에 따라 제 각각의 빛을 터뜨리는 칠예(漆藝)의 깊이를 닮았다. 마주 선 관람객의 눈동자 속에서 그 빛과 색점들은 화면 깊숙이 조용히, 그러나 지극히 찬란하게 반짝인다.

이대원의 찬란한 색채 세계=평택매일뉴스
사람들은 평생을 아름다운 들판과 나무만 마음에 담다 간 그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화가’라 불렀다.
붓 대신 법전을 먼저 잡았던 서울대 법대 출신의 이색적인 이력. 제도권 미술 교육의 아카데믹한 틀에 가히 갇히지 않았기에, 그의 색채 언어는 그 누구보다 자유롭고 순수하며 야생의 생명력으로 충만할 수 있었다. 1973년, 파주 땅에 화실을 마련하고 수십 년간 그곳 과수원의 사계절을 지켜보며 흙을 밟고 그려낸 ‘농원 연작’은 그의 예술적 경지가 가장 높고 푸르게 무르익은 영혼의 정원이었다.
그의 손끝을 거쳐 수십 년간 축적되어 온 조형의 역사 또한 한 폭의 대서사시처럼 눈부시다. 1970년대 원근감이 아련히 살아있는 풍경 위에 알알이 맺히던 색점들은, 1980년대에 이르러 긴 색선(色線)의 호흡으로 이어지며 대지에 생동하는 핏줄을 기워 넣었다. 1990년대로 들어서자 마침내 아득한 원근의 경계마저 흐려졌고, 점과 선, 그리고 강렬한 색면이 온 화면을 뒤덮으며 마침내 그림과 대자연 그 자체가 하나로 물들었다.

이대원의 찬란한 색채 세계=평택매일뉴스
가로 5미터에서 7미터에 이르는 웅장한 대작 앞에 서면, 풍경을 멀리서 관조하던 이의 발걸음은 어느새 가만히 자연의 품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것은 굳이 머나먼 명산을 찾아 떠나지 않고도 방 안에 편히 누워 가경(佳景)을 거니는 동양 미학의 최고 경지
깊은 공간으로 확장된 그의 화폭 안에서 관람객은 과수원 길을 거니는 바람이 되고, 잎사귀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 그 자체가 된다.

이대원의 찬란한 색채 세계=평택매일뉴스
한상호ptm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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